교회소개
연혁
1950 - 1953
∙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 많은 교인들이 서울을 떠나 피난을 갔으며, 교회당 건물은 폐허로 변하다. 일부 피난을 떠났다가 되돌아 온 교인들과 미처 피난을 가지 못했던 교인들이 교회 인근 일본인들의 절터에 모여 눈물겨운 예배를 드리다가 1. 4 후퇴로 다시 피난길에 오르다. 부산으로 피난한 교인들이 정대위 목사 인도로 부산에서 예배드리다.
1953. 07
∙ 1953년 7월에 한국전쟁 휴전협정의 조인으로 서울이 수복(收復)되어 한장형 전도사를 서울에 선발대로 파견하여 을지로 4가 최복음 권사 댁에서 수복 후 첫 예배 드리다.
1953. 09
∙ 윤경애 전도사 부임하다.
∙ 폐허된 교회 대지에 천막교회를 세우고 예배드리다.
∙ 박원정 선생(이화여대 교수)이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다.
1954. 01
∙ 폐허된 교회 대지를 매각하고 인접 초동 105번지에 155평을 매입하다. 그후 수표동 110번지의 대지 128평을 확보하고, 초동 105번지로 환지(換地) 계약 체결하여 교회 대지는 총 283평에 이르게 되다.
1954. 03
∙ 여신도회 회장에 박영순 집사를 선출하다.
1954. 12
∙ 제3대 조향록(趙香祿) 목사 부임하다.
1955. 01
∙ 초동교회가 한국기독교장로회에 가입하다.
1955. 02
∙ 천막교회를 철거하고 판자교회 세우다.
∙ 정관빈 장로 임직하다.
1955. 04
∙ 김대현 선생(작곡가, 대학 교수)이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다.
1955. 09
∙ 캐나다연합교회교단(UCC)이 기장 교단에 파송한 선교사 오인수, 오애숙 목사 부부 (Rev. & Mrs. Irwin)가 서울 도착 후 첫째 주일에 초동교회에 출석하여 교인 등록하다.
1955. 10
∙ 서울시에서 금호동 지구 택지조성사업을 시행하게 되어 캐나다선교사 오인수 목사의 재정 후원으로 대형 천막을 구입하여 금호동교회 (서울북노회 성호교회)를 설립하다.
1956. 02
∙ 송옥선 전도사 부임하다.
1956. 05
∙ 이준우 집사를 성가대 지휘자로 초빙하다.
1957. 02
∙ 김학수, 이병호 장로 임직하다.
1957. 04
∙ 홍화숙 전도사 부임하다.
1957. 06
∙ 이성천 선생(서울대학교 음대학장 역임)을 중고등부 성가대장으로 초빙하다.
1958. 03
∙ 김봉익, 고승건, 이영환 장로 임직하다.
1959. 01
∙ 이수민 목사(서울 YMCA 간사)를 중고등부장으로 초빙하다.
1959. 05
∙ 중구 초동 105번지에 2층 벽돌교회 신축하고 봉헌하고, 헌당예배에서 성가대가 박목월 작사, 김대현 작곡 “헌당송”을 초연(初演)하다.